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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뮈드 오 디나 주종-짝사랑 드림 

YUI

- 본 글에는 유혈 묘사 및 죽음에 대한 묘사가 있습니다.


 

 

 진흙 투성이가 된 몸을 간신히 일으켰다. 땅에 쓸린 팔과 다리는 온통 모래 범벅이었고, 군데군데 벌어진 피부 사이에는 핏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러나 제 몸을 챙길 틈도 없이 쿠로사와 유이는 달리기 시작했다. 살아남기 위한 발악이었다. 여기서 멈추면 죽는다. 그동안의 고생이 전부 물거품으로 돌아간다. 유이는 이를 악물고 수없이 많은 계단을 올라갔다. 다리의 통증은 격해졌고, 한껏 벌어지고 떨어져 나간 온몸의 피부는 피투성이가 되었다. 폭우를 맞은 것마냥 땀이 흘러내렸고, 긴 머리카락은 모래와 진흙을 품은 채 한껏 엉켜 있었다. 머리 손질을 할 여유 따위 없었다. 그저 앞만을 바라보며 유이는 끝없이 달렸다.

 다리가 말을 듣지 않을 때쯤, 드디어 옥상에 다다랐다. 유이는 묵직한 문을 온몸으로 밀어 열었다.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일만큼 높은 곳에 있다는 사실은 조금의 위안이 되었다. 유이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 땀방울이 바닥을 적셨다. 그는 긴 숨을 내쉰 후, 주위를 둘러보았다. 암흑으로 물든 도시, 곳곳에서 울리는 경보음, 수많은 사람들의 비명 소리, 무언가 타들어가는 냄새와 바람을 타고 흩날리는 잿가루. 다시금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이것은 단순한 재앙이 아닌, 종말의 예고였다.

 

 전력을 다해 승리를 쟁취했건만, 맞닥뜨린 것은 낙원이 아닌 지옥이었다.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을 유이는 감당할 수 없었다.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는 죽음의 손길을 그저 가만히 서서 지켜봐야만 했다. 더는 볼 수 없다는 듯 유이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어두컴컴한 것이 눈을 떴을 때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폐 깊숙한 곳까지 숨을 들이마셨다가, 공기 한 움큼조차 남기지 않겠다는 듯 숨을 뱉었다.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한 자신 나름의 노력이었다. 그러나 효과가 없는 것인지, 양 어깨는 미세한 떨림을 멈추지 않았다. 두 손을 꼭 쥐었다. 어느새 흥건해진 땀이 손틈 사이의 빈 공간을 채웠다. 챗가루의 냄새가 코끝을 찌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폭발음이 온 도시를 울렸다. 유이는 저도 모르게 몸을 휘청거렸다. 금방이라도 무너져버릴 듯한 유이의 몸을 받쳐준 것은 그의 서번트, 디어뮈드였다. 그는 유이의 양 어깨를 꼭 붙잡았다. 자그마한 떨림이 손을 타고 전해졌다. 디어뮈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그마한 몸을 제 품에 담았다. 유이는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 눈을 꿈벅거렸다. 여전히 귓가를 울리는 비명 소리와 코끝을 간지럽히는 재의 냄새는 너무나도 생생했다. 반면에 그의 품에 안겨있다는 사실은 꿈만 같았다. 꿈이라도 좋았다. 죽음을 앞둔 순간에 그의 얼굴을 한 번이나마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은 유이에게 있어 가장 큰 축복이었다. 다시금 눈을 감고, 숨을 들이마셨다. 그저 이 순간을, 이 행복을 좀 더 느끼기로 했다. 그 역시 유이의 마음을 알았다는 듯 한 손으로 유이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분명 지저분하고 불쾌할텐데. 유이는 종말의 순간에도 그런 걱정을 하는 자신에게 헛웃음이 나왔다. 

 

 “주군,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디어뮈드의 목소리가 유이의 귓가에 닿았다. 유이는 응, 짧은 대답을 한 후 다시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진하게 풍겨오는 그의 체향. 그리고 비릿한 피의 냄새. 비릿한 향을 느끼자마자 유이는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황급히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의 몸 이곳저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사지가 멀쩡히 붙어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상처투성이였다. 성배 전쟁의 막을 내리기 위해 그 나름대로 고군분투한 흔적이었다. 유이는 제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라도 치료해 주겠다며 양 손을 들어올렸다. 평소였다면 유이의 마력량을 걱정해 거절했을 디어뮈드였지만, 이번에는 차마 막을 수 없었다. 유이가 손을 벌벌 떨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름의 준비를 마친 유이는 디어뮈드의 양 팔을 잡은 채 상처의 치유에 온 정신을 집중해보지만, 효과는 미미하기만 했다. 제 마술회로는 이런 순간마저도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주군.”

 

 눈을 꼭 감은 채 자신의 양 손목을 꼭 쥐고 있는 유이를 바라보며 디어뮈드는 애써 웃어보였다. 이제 그만해도 된다는 의미의 부름이었다. 유이가 눈물이 맺힌 눈으로 디어뮈드를 올려다봤다. 상태는 좀 전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디어뮈드는 이런 자잘한 상처야 시간이 지나면 점차 나을 것이라며 유이를 안심시켰다. 유이는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끄덕였지만.

 도시의 상황은 더욱 나빠져갔다. 고통에 찬 울음 소리와 사이렌 소리는 점차 커졌고, 뿌연 연기가 도시를 채우기 시작했다. 유이는 디어뮈드를 꼭 붙잡은 채 도시를 내려다봤다. 일류 마술사가 온다 할지라도 이 상황을 홀로 구제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물며 삼류 마술사인 유이는 어떻겠는가. 그저 제 서번트를 꼭 붙잡은 채 도시의, 세계의 파멸을 지켜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유이는 고개를 숙였다.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었다면……. 이를 악물었다.

 

 성배, 모든 소원을 이뤄 준다는 만능의 잔. 그것을 얻기 위해 이토록 긴 시간을 기다려왔다. 유이가 바란 것은 마술사로서의 제 가치를 증명하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이와 함께 미래를 맞이하는 것. 단 두 가지뿐이었다. 인류의 종말이라는 지금의 상황은 자신이 바라는 것과 거리가 멀었다. 과거 후유키 시의 성배 전쟁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들었다만, 터무니없는 이야기로만 생각했었다. 그저 대화재와 성배 전쟁의 우연한 만남이라고만 여겼다. 하지만 우연이 아닌, 명백한 인과관계로 이어진 일이라는 것을 지금의 참상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 성배 전쟁의 성배는 후유키 시의 성배를 모방하여 만든 ‘실패작’이었으므로.

 이제 곧 이 건물마저 불타 없어질 것이다. 불길이 조금 전보다 가까워졌다. 타오르는 불의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유이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언제나 미숙하게만 느껴졌던 자신이 지금 순간,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좀 더 나은 마술사였다면, 성배 전쟁에 참가하지 않았더라면, 아버지의 공방을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과거의 일들이 모두 실수로만 여겨졌다. 걸어왔던 길이 전부 오답인 것처럼 느껴졌다. 자신 자체가 실패 그 자체인 것만 같았다. 참았던 눈물이 터진다. 아, 나는 그동안 잘못만을 반복해왔던 것인가. 

 

 고개를 떨군 채 눈물을 흘리는 제 주군을 디어뮈드는 말없이 끌어안았다. 아마 이것이 마지막이 되겠지. 조금 더 빨리 자신의 감정을 인정했더라면. 그랬다면 이 비극을 홀로 짊어지진 않았을 텐데. 자신의 잘못이라며 걸어온 모든 시간들을 후회하게 만들지는 않았을 텐데. 차라리 깨달음이 늦은 것이었다면 이토록 마음이 아프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군의 사랑을 거부하는 것만이 충성의 길이라 믿었다. 서로의 선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다시 얻은 삶의 기회를 얼룩지게 만들 수는 없다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제 오산이었다. 지금 제 눈 앞의 사람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매번 사랑을 속삭이던 유이였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무뎌질 정도로 입에 담고 또 담았었다. 그러나 자신은 언제나 그 말을 외면했다. 받아줄 수 없다며 거절했다. 그의 웃음이, 눈물이 매번 마음을 울리고 있었음에도 이를 모른척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이 와서야 제 마음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유이를 좀 더 세게 끌어안았다. 세계를 책임지기엔 너무나도 작은 몸이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불길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끝이 머지않았다. 여기서 눈을 감는다 해도 이 사랑이 끝나는 것은 아니야. 유이가 속삭였다. 디어뮈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것은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 어느 시간에서는 분명 함께 여름을 맞이할 거라, 둘은 그리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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